캐나다 시인이자 고전학자인 앤 카슨은 2015년 8월 스웨덴 스톡홀름의 국립 현대미술관(Moderna Musset)을 찾아 소포클레스의 비극 ‘안티고네’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안티고닉(Antigohblsphjf)’을 공연으로 선보였다. 사진은 당시 모습. 카슨은 테베의 노인들로 구성된 코러스 역할을 맡았고, 다른 배역은 스웨덴 작가 및 문학 연구자·학생들이 맡았다. /AP 연합뉴스
고대의 목소리를 소환해 현대 문학의 지평을 넓혀 온 캐나다 시인 앤 카슨(76)이 올해 노벨문학상의 영예를 안았다. 시인 겸 번역가이자 고전학자인 카슨은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 시를 쓴다”는 찬사를 받는다. 캐나다 작가로는 2013년 앨리스 먼로 이후 두 번째다. 2017년 이후 지켜진 ‘남녀 격년 수상’ 기조가 올해도 이어졌다.
8일(현지 시각) 스웨덴 한림원은 “고전적 전통과 자유롭고 유희적인 대화를 나누며, 현대 문학의 새로운 형식을 개척해 온 대담하고 창의적인 작품 세계를 기린다”며 선정 이유를 밝혔다. 한림원과의 통화에서 카슨은 “나는 지금 아이슬란드에서 바람 소리를 듣고 있다”는 짧은 소감을 전했다.
앤 카슨은 1950년 캐나다 토론토에서 태어났다. 1981년 토론토대에서 고전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시를 쓰고 번역하며, 프린스턴대·맥길대·미시간대 등에서 고전문학을 연구하고 가르쳤다. 그는 “생업으로 고대 그리스어를 가르친다”는 짧은 문장으로 자신을 소개하기도 한다.
그가 고대 그리스어에서 번역한 작품은 그 자체로 독립적인 문학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손오공게임장
사포의 시 단편을 새롭게 해석한 ‘그렇지 않다면, 겨울’(2002), 소포클레스의 비극 ‘엘렉트라’(2001), ‘안티고네’(2015), 에우리피데스의 ‘바카이’(2015) 등이다. 한림원은 “문헌학자의 집요한 탐구와 새로운 의미를 창조하려는 시인의 열망이 교차한다”고 그의 작품 세계를 평했다.
1981년 박사 학위 논문을 개작한 장문의 에세이 ‘에로스, 달콤씁쓸한’(1986)에선 ‘에로스’의 면면을 살핀다. 그가 보기에 에로스에 힘을 부여하고 시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받는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 곧 거리다.
1990년대에 들어 카슨은 주목할 만한 작품을 잇달아 발표했다. ‘유리, 아이러니 그리고 신’(1995)에 수록된 ‘유리 에세이’는 장르의 경계가 흐려질 때 장시(長詩)가 얼마나 풍부한 가능성을 지닐 수 있는지 보여준다. 그의 최고 걸작으로 평가받는 ‘빨강의 자서전: 운문 소설’(1998)은 압도적인 서정성을 장대한 서사시 형식 속에서 펼쳐 보인다.
세상을 떠난 오빠 마이클을 기린 책 ‘녹스’(2010)도 카슨의 기념비적 작품이다. 한림원은 이를 “죽은 형제에게 바치는 사진·편지·글을 아코디언처럼 길게 펼쳐지는 형태로 엮어 상자에 담은 묘비명과 같은 작품”이라고 평했다.
카슨에게 “단어의 어원을 탐구하는 일은 모든 작업의 출발.”이다. 2024년 4월 ‘파리 리뷰’와 한 인터뷰에서 그는 “인간으로서 말한다는 건, 매 문장마다 어둠 속으로 뛰어드는 절망감을 극복하려는 노력”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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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내가 쓰게 되는 글은 그저 빛의 모습일 뿐”이라며 “마치 나와 빛 사이에 어떤 계약이 이미 맺어진 것 같다”고 했다. 다만 “그 계약이 어디서 온 건지는 미스터리”라고 했다.
이 인터뷰에서 카슨은 문헌학자답게, 사전을 찾아보는 과정에서 “마치 몽상에 잠긴 듯, 생각이 멈추는 듯한 망설임의 순간”이 사라진 듯한 오늘날 ‘컴퓨터화된 사고 과정’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요즘 사람들은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버튼 하나만 눌러 컴퓨터에 저장된 사전에서 즉시 그 단어의 뜻을 찾습니다. 단어의 어원이나 다른 가능한 의미들을 살펴볼 기회조차 없습니다. 그 간격이 사라진 것은 언어를 바라보는 방식에 완전히 다른 의미를 부여합니다. (이 간격은) 사고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뇌를 잠시 멈추게 하는, 아는 것에 이르는 과정의 일부입니다. 저는 그 간격을 잃어버린 것이 안타깝습니다.” 이 답변은 딸깍, 하면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이 순식간에 튀어 나오는 인공지능(AI) 시대에 고전에서 독창성을 길어내는 시인이 선택받은 이유를 짐작하게 한다.
앤 카슨 연표
1950 캐나다 토론토 출생
1986 첫 에세이 ‘에로스, 달콤씁쓸한 ’ 출간
1998 운문 소설 ‘빨강의 자서전’ 발표
2001 여성 최초 T.S. 엘리엇상 수상
2010 시집 ‘녹스’ 발표
2014 시집 ‘The Albertine Workout’(미번역) 그리핀 시문학상 수상
2020 아스투리아스 상
2021 시집 ‘H of H Playbook’(미번역) 발표
2024 시집 ‘Wrong Norma’(미번역) 발표
2025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시 부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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